일상의로의 초대

사춘기 아이들 마음을 열게 한 하루, 강아지 나무 이야기

소소한 루틴 2025. 5. 8. 15:33

보고싶은 나무


우리 가족은 원래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데,

이웃집 사정으로 하루 동안 강아지 한 마리를 맡게 되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나무'였는데,

셰틀랜드 쉽독 품종의 나이 많은 강아지였다.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고,

걷는 것도 많이 힘겨워 보였다.

처음 만난 나무는 조금 낯설었지만 이내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며 하루를 함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첫만남

 

 

나무는 짖거나 부산스럽게 굴지 않고 말없이 우리 곁을 지켰다.

때론 조용히 옆에 누워 꾸벅꾸벅 졸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이 왠지 짠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강아지 한 마리가 집 안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특히 사춘기인 두 아들은

하루 종일 나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엔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들이

나무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한층 밝아진 모습이었다.

 

나무를 쓰다듬으며 함께 있는 동안 아이들의

표정에는 오랜만에 평화롭고 안정된 빛이 감돌았다.

나무는 참 예의 바르고 훈련이 잘 된 강아지였다.

 

자리를 뜨지 못하는 아이들

 

 

하루 세 번, 새벽과 점심,

저녁에 정해진 시간에만 집 밖에 나가 용변을 보았고

실내에서는 절대로 실례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집 안에 배변 패드를 깔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생활 습관이 절제되어 있다 보니 우리 가족은 나무에게 더욱 애정이 갔다.

산책 시간에는 나무와 천천히 동네를 걸었다.

나무는 나이가 많아 금세 지치는 듯했는데, 힘들면 잠깐씩 멈춰 쉬었다가 다시 걷곤 했다.

 

아이들과 나무와의 산책

 

우리 가족도 보조를 맞춰 나무와 같은 속도로 걸으며 느릿느릿 산책의 즐거움을 함께 누렸다.

빠르게만 지나치던 일상이 나무 덕분에 잠시 느려지고, 모두가 여유를 찾는 시간이었다.

헤어짐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저녁이 되자 이웃집 주인이 나무를 데리러 왔고,

나무는 우리 문 밖을 나서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마음에 남던지,

나무가 떠나자마자 집안은 금세 적막해졌다.

하루밖에 함께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우리에게 큰 존재가 되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밖에서 셸티(셰틀랜드 쉽독)를

볼 때마다 나무가 떠올라 시선이 머문다.

 

 

 

TV나 길에서 비슷한 강아지가 보이면

가족들은 반가우면서도 쓸쓸하게

"나무 생각나네." 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무는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준

고마운 친구로,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나무를 기억할 것이다.